잿불 속의 군단은 어둠칼 계열 중에서도 굴러가는 부품이 많은 룰이다. 군단 전체의 자원과 사기를 매 회차 관리해야 하고, 플레이어들은 직책을 하나씩 나눠 그 관리의 일부를 떠맡는다. 쟈키퐁이 받은 직책은 작전관이었다. 임무를 고르고, 누구를 보낼지 정하고, 세션 초입의 브리핑을 맡는 자리다. 마스터 노트의 2화 진행 순서에 “(오늘 브리핑은 작전관이신 쟈키퐁님께서 해주실겁니다.)”가 그대로 적혀 있으니, 직책이 형식이 아니라 진행에 박혀 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는 티알피지를 제대로 해본 적이 거의 없는 상태로 이 캠페인에 왔다.
“그리고 퐁님도 뉴비로서 진짜… 게다가 하필이면 고인물도 번거로워 할 법한 작전관을 맡으셔서 배로 고생하셨는데… 그래도 다이스 억까에도…! 작전관의 어렵고 힘든 부분에도…! 퐁님이 어떻게든 버티고 이겨내고, 결국 그 덕에 이렇게 같이 엔딩을 볼 수 있었던거라고 생각해요.” — 날다다, Relight 캠페인 후기
이 글은 그 열한 세션에 관한 것이다. 특이한 것은 힘들어한 기록을 스스로 매 회차 남겼다는 점이다. 덕분에 성장 곡선이 남의 증언이 아니라 본인의 문장으로 남았다.
| 항목 | 내용 |
|---|---|
| 군단 직책 | 작전관 |
| 스타팅 특수병 | 바론 트레버 (저격수) |
| 주로 굴린 신병 | 보라 키리시, 세네하 카트리, 비넷 |
| 그 밖 | 키예르 경(척후병)·워레니아·제이드 등 임무별 PC, 2화에서 치킨무의 산호빛 거둔 들판 대리 플레이 |
1화에 이미 두 가지를 적어 뒀다

첫 세션 후기에 걱정과 깨달음이 나란히 있다. 걱정 쪽은 이후 내내 반복될 모티프의 첫 등장이다.
“캐릭터 2명 운용 그리고 생각보다 할게 많고 어려운 작전관(…크..큰일이다)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또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 본인, Relight 1화 후기
깨달음 쪽은 뉴비의 글이라기에는 이르다. 캐릭터를 완성해서 들고 오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하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이해를, 첫 세션이 끝난 시점에 이미 문장으로 정리해 둔다.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스토리를 진행하며 캐릭터의 방향성이 조금씩 다듬어져 가는 거란 생각이 드니까 긴장을 풀고 편하게 세션에 임해도 되겠단 마음가짐도 생기고 좋았습니다. 캐릭터 세팅된 것 그대로 엔딩까지 끌고가야하는 거라고 저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었더라구요.” — 본인, Relight 1화 후기
같은 세션을 본 다른 플레이어의 기록은 시작부터 평가가 다르다. 날다다는 이런 방식의 세션인 줄 모르고 왔다는 사람이 “처음치고 너무 자연스럽게 알피를 잘하셔서 놀랐”다고 쓰고, 전투 밖에서 특수 능력이나 출신 설정을 끌어와 캐릭터가 설 무대를 직접 만들어 낸 대목을 “몇 번 봐도 감탄스러운 장면”으로 꼽는다.
“제가 정말 어려워했던 에피소드였습니다”
3화 후기는 어려웠다는 말로 시작하고, 그 어려움의 내용을 룰 용어로 특정한다. 저항을 하지 않고 결과를 그냥 받아들이는 습관이었다. 후기의 상당 분량은 자기 복기가 아니라 남의 장면 감상이고, 스스로 “감탄 연발의 관객모드”라고 적는다.
“그리고 저항하는 걸 자꾸 잊고 응… 나는 그렇다. 하고 순응해버리는 것… 다음부터는 계속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저항해보이겠습니다…!!!” — 본인, Relight 3화 후기
5화, 본인이 표시한 전환점
전환점을 남이 지목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찍었다. 5화 후기에서 그는 처음으로 “안정적”이라는 말을 쓴다.
“이번 세션이 저에게는 가장 안정적인 세션이었다고 느꼈어요. (…) 이전까지는 플레이하시는 것들이 너무나 새로운 정보여서 벅찬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다른 플레이어님들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실지 기대도 되고, 저도 행동하거나 드디어 저항이라는걸 좀 더 자유롭게 해보게되더라구요. 룰북도 이제야 읽히는거 같구요” — 본인, Relight 5화 후기
3화에서 “저항하는 걸 자꾸 잊는다”고 적었던 사람이 두 회차 만에 “저항을 자유롭게 하게 됐다”고 쓴다. 문제를 스스로 이름 붙이고 스스로 닫은 셈이다. 다만 직책에 대한 평가는 그대로 남는다.
“작전관의 포지션은 아직도 어렵고 고민이 많지만… 이제 플레이어로서는 확실히 즐기게 된 것 같습니다.” — 본인, Relight 5화 후기
이 두 줄이 그의 위치를 가장 정확히 요약한다. 자리는 끝까지 어려운 자리로 남았고, 플레이는 그 사이에 자기 것이 됐다.
다이스가 뒤집힌 구간
0화의 그는 다이스로 유명했다. 날다다의 0화 후기에 “롤20 유료결제 하고 오신 거 아니냐고” 다들 농담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중반부터는 정확히 반대가 된다. 키예르 경, 트레버, 세네하, 워레니아가 차례로 험한 꼴을 보고, 팀은 이 구간을 “다이스 억까”라고 부른다. 정작 그의 7화 후기는 그 상황을 자기 몸으로 번역해 적는다.
“팀에 큰 영향을 줄까봐 정말 손에 땀을 쥐고(물론 등에 식은땀까지요) 끝까지 진행했는데, 결국 눈에 땀까지 흘리게 된 정말 대단한 탈수세션이었습니다…(털썩)” — 본인, Relight 7화 후기
팀이 그를 기억하는 방식은 결과가 아니라 그 뒤의 행동이다.
“쟈키퐁님은 저번 키예르 경부터해서 다이스로 너무나도 고통 받고 계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매번 판정에 들어가고, 저항하고 끝까지 공격하는 걸 포기하지 않는” — 날다다, Relight 6화 후기
자평과 팀의 평가가 어긋나는 지점도 여기다. 어긋나는 방향이 일정하다.
“쟈키퐁님은 이전 후기에서 RP에 어려움을 겪으셨다고 말씀하셨지만 쟈키퐁님만의 빛나는 캐릭터 RP가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따뜻하게 다가와 플레이하며 느끼게 되는 많은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있었습니다.” — 동료 플레이어, Relight 캠페인 후기
마스터가 본 트레버

마스터가 캠페인 후기에서 그를 직접 평한 대목은 저격수 바론 트레버 항목이다. 룰상 유리한 쪽으로만 굴리는 캐릭터가 아니었다는 관찰에서 시작해, 그 선택이 세계에 무엇을 남겼는지로 끝난다.
“저는 트레버가 현혹으로 첫 판정을 시작한 것도 잊혀지지 않네요(하지만 넌 저격수잖아..). 처음에는 누가 죽든 말든 신경 안 쓰는 쿨뷰티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러 곳에서 PC나 NPC들을 다정하게 대하고 생각해주는 모습이 늘 좋았습니다. 다정하게 말을 걸어줄 줄 아는 트레버와 쟈키퐁님 덕분에 많은 PC와 NPC들이 좀 더 살아있는, 상호작용할만한 가치가 있는 세계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마스터, Relight 캠페인 후기
최종화에서 마스터는 트레버를 군단의 양대 딜러 중 하나로 센다. 첫 판정을 현혹으로 시작했던 저격수가 마지막 전투의 화력 축이 되어 있었다.
세션 밖에서 한 일, 그리고 마지막 세션
잿불의 신병들은 계속 죽는다. 그는 자기가 굴린 신병들이 죽지 말라고 초상화를 미리 그려 두었고, 그 그림들은 결국 추도 장면에 놓였다. 캠페인 후기도 글이 아니라 팀원 각자의 캐릭터를 한 화면에 담은 단체 일러스트로 냈다.
“세션을 마치고 꼭 이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고, 세션이 끝난 다음 날부터 어찌 작업을 시작해서… 후기 마감일에서야 결국 완성했네요. (…) 멋진 경험을 선사해주신 여러분께 선물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물론 저 자신에게도요!” — 본인, Relight 캠페인 후기
그 후기에는 그림을 엽서나 포스터로 만들어 나눠도 되겠냐고 허락을 먼저 구하는 문단이 붙어 있다. “직접 만드시고 그리신 캐릭터들”이라는 인식이 먼저 있었다는 뜻이다.
9화 후기의 한 문장이 이 캠페인의 곡선을 그대로 담고 있다. 같은 후기에는 세션 타이틀이 자기 대사에서 나왔다는 대목도 있다. 브리핑을 맡던 사람의 말이 회차의 제목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세션카드를 훑어보면서 캐릭터를 만들어보는데… 이제야 저 잿불에 대한 이해도가 완전해졌단 느낌이 들었어요… 적응하니까 엔딩이네요…” — 본인, Relight 9화 후기
최종화 후기의 절반은 NPC 라하자르 이야기다. 자기가 만든 캐릭터가 최애가 될 거라 예상했다가 그렇지 않았다는 고백으로 시작해 엉엉 울었다는 문장으로 닫는다. 그리고 캠페인 후기의 마지막은 게임 이야기가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오래 걸려 있던 매듭을 여기서 풀었다는 기록이다.
“저는 그림을 그리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입장으로서 이 문제가… 평생에 걸쳐서 참 속상하고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캐릭터를 만들고, 서사를 만들어 내는 게 저는 정말 어려웠거든요. 게임을 해도 캐릭터 이름은 꼭 쟈키퐁이었고, 무언가의 패러디에서 그쳤던 제가, 이제는 티알피지 덕택에 새로운 세계의 활력있는 생명체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뿌듯합니다!” — 본인, Relight 캠페인 후기
만들어 두고 굴리지 못한 캐릭터 하나
어둠칼 시즌5(로스트 앤 파운드)의 기록에도 그의 이름이 한 번 나온다. 0화 캐릭터 메이킹에는 참여했다. 만든 PC는 가명 ‘솜사탕’의 티케로스인 이방인이었고, 이 팀 최초의 기억상실 설정이었다. 날다다의 0화 후기가 그 캐릭터를 이렇게 소개한다.
“왠지 이름부터 엄청 귀여운… 가명이 솜사탕인 티케로스인 퐁님 캐릭터도 굉장히 기대되고, 또 이방인이 새로 추가된? 플레이북이다 보니까 어떻게 플레이 하실지 (…) 또 이 팀 최초로 기억상실 설정에…… 또 자신이 ‘이방인’ 특성을 가진 게 싫은 친구여서 내적인 갈등과 앞으로 펼쳐질 서사가 너무나도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 날다다, 시즌5 0화 후기
본세션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시즌5는 셰프·오프너·사이렌 세 사람으로 진행됐고, 솜사탕은 시트만 남긴 채 도스크볼에 나가지 못했다. 기대를 적어 둔 문단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이 캐릭터는 플레이되지 않은 채로 팀의 기록에 한 번 등장하고 만다.
캐릭터 메이킹이 이 사람에게 어떤 시간이었는지는 Relight 0화 후기에 이미 적혀 있다. 만들어 두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하며 다듬는 것이라는 깨달음도 거기서 나왔다. 솜사탕은 그 다듬을 기회를 갖지 못한 유일한 캐릭터인 셈이다.
맺음
이 인물을 한 줄로 적는다면 “어려워했다”가 아니라 “어려운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가 맞다. 작전관은 캠페인 마지막까지 어려운 자리로 남았고, 그는 그것을 매 회차 정직하게 적었다. 그 기록이 남아 있어서 열한 세션짜리 성장 곡선을 지금 되짚어 볼 수 있는 것이다.
“쟈키퐁님 진짜 리액션 부자에 반응도 엄청 잘해주시고 세션 내내 오디오가 퐁님 덕분에 가득히 차는 거 보고 진짜 감동 받을 때도 있을 정도로… 정말 진심으로 열심히 세션 한 순간, 한 순간마다 열심히 참여해주시는 게 다 느껴지더라구요.” — 날다다, Relight 캠페인 후기
근거는 Relight 후기 66편과 마스터 노트, 어둠칼 시즌5 후기 일부다. Relight 후기 DB에는 작성자 정보가 남아 있지 않아, 본인의 말로 인용한 것은 본문에 이름을 밝힌 후기로 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