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룰에서 먼저 본 것은 안전장치였다
첫 시즌을 마치고 쓴 후기에서 직스는 시스템을 규칙의 목록이 아니라 그 규칙이 플레이어에게 무엇을 해주는지로 정리한다.
“어둠속의 칼날의 시스템은 다른 것 보다 이야기가 우선하고 있다는 점이 재밌었습니다. 플레이 도중 주사위가 망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인데요, 모두 재미있는 이야기로 이어질거라는 믿음이 완충장치가 되어 마음이 한결 편해졌어요.” — 본인, 시즌1 캠페인 후기
같은 글에서 그는 캐릭터의 죽음과 투옥까지 룰이 미리 마련해 둔 회수 경로로 읽고 그것을 “도스크볼 사회안전망”이라 부르며 자기 PC를 더 험한 자리로 밀어넣겠다고 적는다. 시트를 뜯어보다 플레이북마다 비슷한 특수능력이 하나씩 배치된 것을 발견하고는 “존 하퍼는 굉장히 똑똑한 사람인가봐요”라고 덧붙인다.
이 시선은 여섯 해 동안 룰이 세 번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 딥컷 도입을 두고는 “주저하게 되거나 간소화할 수 있는 부분들을 깎아내어 보다 경쾌한 플레이”가 됐다고 평하고, 단체행동에 대해서는 “주사위 하나하나가 의미있게 그려질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는다. 룰의 문장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이 테이블에서 만들어내는 장면을 본다.
여섯 해, 일곱 자리
| 구간 | 룰 | 담당 PC | 자리 |
|---|---|---|---|
| 시즌1 망나니즈 | 어둠칼 | 바퀴벌레 | 족제비 |
| 시즌2 세이렌 상사 | 어둠칼 | 송장벌레 | 사냥개 |
| 시즌3 황혼의 전달자 | 어둠칼 | 종알이 | 할리퀸 |
| 시즌4 언체인드 (2세션) | 어둠칼 | 데이지 | 형사 |
| 시즌5 로스트 앤 파운드 | 어둠칼 딥컷 | 셰프 | 야매의사 |
| Relight | 잿불 속의 군단 | 은빛 사붓한 바람, 페니 마나부르 외 | 사서관 · 척후병 |
| ErrorHeart | 대거하트 | 자글롬 | 바드 |
표 바깥에 하나가 더 있다. 2020년에 터진 잿불 캠페인 Long Shadow에서 그가 굴리던 군단병 스베레나 알리코브나를, 마스터가 “캐릭터가 완성되어 있어서 편했어요”라며 4년 뒤 Relight에 NPC로 되살렸다.
상식인 자리에서 시작했다

시즌1의 바퀴벌레는 연대보증을 세우고 도망친 과거에서 책임감으로 가는 캐릭터로 설계됐는데 플레이는 다른 곳에 도착했다. 본인의 진단은 “1화부터 속성으로 상식인이 되어버렸습니다”였지만, 마스터는 같은 현상을 정반대로 읽었다. “PC들이나 NPC들이나 막나가는 인간들 뿐인데, 그 사이에서 정신줄 잡고 있는 사람도 필요하니까요.”
시즌2의 송장벌레에서 그 역할은 팀의 기능으로 굳는다. 마스터는 중후반부에 핸드아웃을 마음껏 뿌릴 수 있었던 이유로 “송장벌레가 읽고 정리하고 의도를 알아채줄 것이라는 믿음”을 든다.
“추리 시퀀스에서도 전투 시퀀스에서도 일행의 행동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도 항상 침착하게 상황을 잘 파악하고, 일행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간파하며 침착하게 자기 역할을 잘 해주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좋은 리더의 자질이라고 생각합니다.” — 마스터, 시즌2 캠페인 후기
정작 본인이 시즌2 후기에 적은 것은 그 칭찬이 아니라 숙제였다. 상황이 닥쳤을 때 자기 캐릭터가 어떻게 움직일지 곧장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더 생생한 캐릭터로 멋진 이야기의 한부분을 차지하고 싶습니다”라는 것. 팀에 기대는 법을 배웠다는 기록도 같은 글에 있다. “쌓이는 신뢰 위에서 뒷일은 다른분들이 어떻게든 해주겠지..! 라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던져볼 수 있어 안심이 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시즌마다 모델을 갈아 끼운다
그는 캐릭터를 만들 때 바깥에서 모델을 하나 데려와 세우고, 다음 시즌에는 그 방식 자체를 바꾼다.
| 시즌 | 모델 | 본인이 세운 방침 |
|---|---|---|
| 시즌2 송장벌레 | 제시카 존스와 베어 그릴스 | “머리에 벌레를 씹어먹는 장면만이 뇌리에 남았고” |
| 시즌3 종알이 | 타짜의 고광렬 | 상식인 자리를 넘기고 말로 뒤집는 쪽으로 |
| 시즌4 데이지 | (탐정 클리셰를 피한 형사) | “플레이하기 쉬운 캐릭터를 만들겠다” |
| 시즌5 셰프 | 없음 | 자신과 다른 성격을 만들려던 방침 자체를 폐기 |
| ErrorHeart 자글롬 | 남을 웃기고 싶어 하는 아저씨 | 인정욕과 열등감을 표현해 보기 |

시즌3이 전환점이다. 두 시즌 내리 맡았던 상식인 자리를 시스터.S에게 넘기고 고광렬을 모티브로 말이 앞서는 할리퀸을 잡았다. 그러면서 조연의 화법을 주인공의 화법으로 옮기는 문제에 부딪혀 종알이를 “평범한 소시오패스 사기꾼”으로 다시 정의하고, 헛소리가 흐름을 끊는다 싶으면 “진지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을 정도로” 스스로 제동을 걸었다고 적는다.
“직스님이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은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아요. 항상 과하지 않은 선에서 상황에 맞게 캐릭터를 다루고, 자기 역할을 해야할 때가 되면 항상 아이디어가 넘치고, 그러면서도 극적인 대사를 쳐주시는 것이 좋았습니다. 단독 MVP만 4번이나 받은 것도 그래서겠죠.” — 마스터, 시즌3 캠페인 후기
오랑시는 같은 시즌 후기에 “할리퀸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잘 보여주신 것 같아요”라고 쓰고, 분위기메이커 역할에 대해서는 “이것도 PC가 신경써서 중간에 도트데미지까지 꾸준히 넣고 있는 거라니까요?”라고 덧붙인다. 분위기를 띄우는 일조차 의도된 작업으로 본 것이다.
두 세션으로 끝난 시즌4의 데이지는 남은 기록이 적지만 에이포의 두 줄이 정확하다. “작정하고 ‘그럴 줄 알았지’를 잡으셔서 역시 베테랑인가?”(0화 후기), 그리고 “데이지는 일행의 이성을 책임지며 이야기를 이끌어 갔고, 그걸로 직스 님의 또다른 면모를 보게 되었습니다”(1화 후기).
어둠칼의 마지막 시즌에서 방침을 뒤집는다
시즌5의 셰프에서 그는 다섯 시즌 동안 지켜온 원칙 하나를 스스로 폐기한다.
“그동안 캠페인에서 캐릭터를 만들면서 의도적으로 플레이어인 스스로와 다른 성격의 캐릭터를 만들려 노력했는데, 이번 캠페인에서는 그러지 않으려 했습니다. (…) 자신의 모습을 애써 반영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본인, 시즌5 캠페인 후기

오래 하고 싶어 하던 추리물이 실현된 시즌이기도 했다. 최종화 후기에서 그는 자기 PC를 3인칭으로 냉정하게 읽는다. “셰프는 자신의 거울상인 리마인더에 대해 복잡한 마음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마스터는 “‘집착은 버리기 어려우니까’ 같은 대사”를 셰프의 개인사와 결부된 대사로 짚었다. 다이스는 이 시즌 내내 그를 도와주지 않았는데, 날다다는 “그런 처참한 다이스 결과를 직스님의 방식으로 잘 풀어내시는 게” 셰프의 개성으로 자리 잡았다고 적었다.
룰을 잘 아는 사람이 팀에서 하는 일
Relight의 잿불 속의 군단은 그가 “어떤 룰북보다도 참가자들에게 강한 스트레스를 주는 룰”이라고 평한 시스템이다. 스트레스가 가장 높은 자리에서 룰 이해가 무엇을 하는지가 이 캠페인에서 가장 잘 보인다.
“룰 파악이 정말 상세하셔서 다들 패닉상태로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던 군단전멸의 위기에서, 직스님의 안내로 몇번 넘겼던 순간들이 특히 기억이 남습니다.” — 날다다, Relight 캠페인 후기
그의 직책은 사서관이었고, 잿불에서 숙영지 풍경을 고르는 선택권이 여기 붙어 있다. 규칙상의 한 칸이 다른 플레이어에게 어떻게 도착했는지를 날다다가 적어 두었다.
“각양각색의 전혀 다른 분위기의 숙영지 풍경이 사서관의 선택, 직스님의 선택으로 바뀌니까 매번 어떤 걸 고르실 지 고민하는 타이밍에 저도 같이 숨을 죽이고 기다리게 되는 거 같네요.” — 날다다, Relight 6화 후기
담당 특수병 은빛 사붓한 바람은 “‘척후병’은 이런거다…!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드는 PC”로 기억됐다. 정작 본인의 캠페인 후기는 다다·오랑시·쟈키퐁·치킨무 네 사람을 한 문단씩 따로 평하는 데 대부분을 쓰고, 자기 PC는 마지막 나열 한 줄에만 넣는다.
화면 바깥의 일도 있었다. 어둠칼 시즌1부터 이어진 촬영 담당이다. 날다다는 그 일을 대신 겪어 보고 나서야 “영상을 보면서 치고있는 텍스트도 보이고, 쉬는 시간이라도 잠시 다른 화면을 켜지 못하는거구나” 하고 알았다고 적는다. 44세션 5년을 닫는 감사 문단에서 마스터가 그를 부른 말도 이것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촬영감독으로 함께해주신 직스님.”
5년 전의 예언이 회수된다
시즌2 후기에서 마스터는 지나가듯 한 줄을 적어 뒀다.
“역시 직스님은 데이터룰을 하면 굉장히 잘 하실 것 같고요.” — 마스터, 시즌2 캠페인 후기
기회는 5년 뒤에 왔다. FitD를 떠나 처음 데이터룰로 간 ErrorHeart에서 그는 바드 자글롬을 맡고, 2화 만에 “세션을 시작하기 전에도 직스님은 데이터룰 정말 잘할 것 같단 생각을 했는데 완전 적응하신 것처럼 보이고”(오랑시, ErrorHeart 2화 후기)라는 말을 듣는다. 룰이 바뀌어도 찾는 것은 같았다. “수치와 규칙으로 정밀하게 묘사하는 것”을 기반으로 한 “캐릭터를 움직이는 전략적인 고민”이 재미있었다고 적는다. 그 이해는 다시 남에게 쓰였다. 랠리 다이스, 투명화, 변신폼 이미지 넣는 법까지 날다다의 후기 거의 매 화에 감사가 등장한다.
“랠리 다이스 매번 받고 공격에 성공할때마다 속으로 직스님 감사합니다 직스님 감사합니다.. 하면서 썼던 거 같아요” — 날다다, ErrorHeart 캠페인 후기
자글롬에 대한 자기 평가는 여전히 설계와 결과의 차이를 짚는 쪽이다. 인정욕과 열등감을 표현해 보려 했는데 “플레이어로서 아재개그를 짜내는데 온 힘을 써버렸고”라고 적는다. 그런데 그 캐릭터가 기계 에일라의 존재통 앞에서 급히 태세를 바꿔 내놓은 대사가 캠페인의 한 장면이 됐다. “무대가 계속되는 한, 스스로가 주인공인겁니다.” 날다다는 이것을 “바드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이자 격려”로 꼽았다.
평소에는 평범하게, 중요할 때 정확하게
여섯 해와 세 개의 룰을 통과한 뒤 마스터가 남긴 총평이 이 플레이어에 대한 가장 압축된 문장이다.
“직스님이 플레이하신 그간의 캐릭터들처럼, 평소에는 평범하거나 그 이하의 행동을 보이다가 중요한 때에 상황에 딱 들어맞는 대사와 판단을 보이는 모습에서 마스터링하는 보람을 느꼈습니다. 새로운 정보를 직접 떠먹여주기보다는 PC들이 알아채서 제시하는 쪽이 어쨌든 좋은 세션이고 좋은 캠페인이라고 생각하니까요.” — 마스터, ErrorHeart 캠페인 후기
룰을 잘 안다는 것이 이 팀에서 무엇을 뜻했는지가 여기 다 들어 있다. 그는 규칙을 이겨야 할 문제로 읽지 않았다. 첫 시즌에 완충장치라고 부른 그대로 규칙은 이야기를 밀어 올리는 장치였고, 그 장치를 남보다 먼저 이해한 사람의 몫은 그것을 자기 활약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옆자리에서 쓸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군단전멸 직전의 안내도, 매 라운드의 랠리 다이스도, 5년치 세션 영상도 같은 자리에서 나온다.
후기를 쓰는 이유를 그는 시즌1에 이렇게 적어 두었다. “저희는 작품의 제작에 참여한 사람이기도 하고 팬이기도 해서.” 이 문서가 가능했던 것도 그 태도 덕분이다. 여섯 해 동안 그는 자기 설계가 어디서 어긋났는지 다음에는 무엇을 바꿀 것인지를 매번 적어 두었다. 그래서 이 글은 잘한 일의 목록이 아니라 방침이 바뀌어 온 순서로 쓸 수 있었다.
근거는 저장소에 미러링된 어둠칼 후기 224편(본인 작성 47편), Relight 후기, ErrorHeart 후기와 마스터 노트다. 시즌4는 2세션으로 조기종료돼 마스터 총평이 없고, Relight 후기의 작성자 귀속은 본문 근거에 의존한 추정이라 그 구간의 인용은 다른 플레이어의 글에서만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