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칼(Blades in the Dark)은 마스터가 준비를 적게 하도록 설계된 룰이다. 상황을 미리 짜두는 대신 판정 결과에 따라 그 자리에서 만들어 나가라고 룰북이 거듭 권한다. 삐룩은 여섯 해 동안 그 룰을 정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한 시즌에 롤20 플레이타임만 614시간을 쓰고, 세션마다 BGM을 새로 찾고, NPC의 테마곡을 세 시즌 뒤에 쓰려고 아껴 둔다.
그리고 그때마다 다음엔 가볍게 가겠다고 적었다. 세 번 적었고 세 번 다 그러지 못했다.
이 글은 그 반복에 관한 것이다. 다만 그 반복이 실패의 기록으로만 읽히지는 않는다는 것이 여섯 해치 후기를 다 읽고 난 뒤의 인상이다. 플레이어들은 그 패턴을 진작에 알아챘고, 놀리면서도 매번 따라갔다.
어떤 유형의 마스터인가
플레이어 후기와 본인 후기를 교차해 보면 유형은 다섯 축에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여섯 해 내내 흔들리지 않은 것이 이 다섯이고, 흔들린 것은 그 강도뿐이다.
| 축 | 성향 |
|---|---|
| 프렙 밀도 | 룰의 설계 의도와 정반대로 돈다. 시즌3 한 시즌에 롤20 플레이타임 614시간 |
| 연출 지향 | 세션이 아니라 방영 중인 드라마로 다룬다. ‘화’로 세고, 절단신공으로 끊고, 엔딩곡을 깐다 |
| 룰 태도 | 존중하되 실험 대상으로 다룬다. 밴을 꺼리고, 막아뒀던 특능을 풀어보고 결과를 기록한다 |
| 팀 운영 | 플레이가 아니라 절차를 설계한다. MVP 선발, 시트 마감, 촬영 담당, 정시출석 보너스 |
| 자기 평가 | 실패를 고정된 형식으로 남긴다. 사문화된 하우스룰의 경위까지 본인 손으로 적어 둔다 |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프렙의 양이다. 시즌3이 끝나고 그는 롤20 접속 시간을 캡처해 계산해 둔다.
“2487시간이군요. (…) 이 캠페인에 614시간을 쓴 셈이네요.” — 마스터, 시즌3 캠페인 후기
연출도 취미가 아니라 관리 대상이다. 사운드트랙 곡 수를 시즌마다 세어 두고, 늘어나는 것을 문제로 인식한다.
“시즌1은 27곡, 시즌2는 54곡, 시즌3는 115곡을 썼더군요. 계속 늘어나기만 하는데 이제 좀 줄이고 새로운 BGM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 BGM이 너무 익숙해지면 곡의 분위기를 즐기게 되기보다는 그냥 ‘아하 이 곡을 여기에 쓰는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 마스터, 시즌3 캠페인 후기
줄이겠다고 적어 놓고, 이후 캠페인마다 ‘음악감독’ 크레딧을 붙이는 관행은 끝까지 유지된다. 이 문서에서 계속 반복될 형태다.
그가 스스로 밝힌 출발점은 존 하퍼의 한 문장이었다.
“스토리 위주의 캠페인을 마스터링하는 건 분명 방영 도중인 TV 쇼의 각본을 쓰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연출들을 실시간으로 해야 된다는 것이겠죠.” — 마스터, 시즌1 캠페인 후기
여섯 해, 일곱 캠페인
| 캠페인 | 룰 | 시기 | 세션 | 후기 |
|---|---|---|---|---|
| 시즌1 | 어둠칼 | 2020.01-02 | 8 | 47 |
| Long Shadow (중단) | 잿불 속의 군단 | 2020.12- | 7 | — |
| 시즌2 | 어둠칼 | 2021 | 12 | 55 |
| 시즌3 | 어둠칼 | 2022.03-05 | 13 | 77 |
| 시즌4 (중단) | 어둠칼 | 2023.01 | 2 | 8 |
| Relight | 잿불 속의 군단 | 2024 | 11 | 66 |
| 시즌5 · 파이널 | 어둠칼 딥컷 | -2025.02 | 9 | 44 |
| ErrorHeart | 대거하트 | 2025-2026 | 9 | 34 |
Data Exfiltration 다섯 시즌의 합이 44세션으로, 마스터가 파이널 후기에 적은 숫자와 맞는다. Long Shadow의 후기는 이 저장소에 미러링돼 있지 않아 마스터의 회고로만 확인된다. 후기 편수는 파일 단위 집계라 같은 회차에 여러 편이 달린 경우가 포함돼 있다.
곡선을 만드는 것은 두 번의 중단과 두 번의 룰 이탈이다.
여섯 국면
변화의 축은 실력이 아니다. 실력은 시즌2에서 이미 플레이어들에게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준비성”으로 불렸다. 실제로 움직인 축은 자기 통제의 방법이다.
I. 도구를 만든다 (2020, 시즌1)

10년 만의 장기 마스터링이었다. 이 시기에 이후 여섯 해를 지배할 장치가 전부 도입된다. 리플레이 대신 후기 쓰기, 마스터도 후기 쓰기, 노션 캠페인 페이지, 세션과 에피소드의 분리, 맵핑.
동시에 첫 실패도 기록된다. D&D의 Inspiration을 하우스룰로 들여왔다가 마스터가 플레이어의 RP에 점수를 주는 것이 찜찜해서 사문화시켰고, 그 경위를 그대로 남겼다. 이 문서를 쓸 수 있는 이유가 이 습관이다.
II. 규모를 키운다 (2021, 시즌2)
“제 마스터링 평생 가장 긴 시간 동안 준비한 세션”이라는 문장이 이 시즌에 나온다. 이탈자 한 명이 생겼지만 엔딩은 냈다. 플레이어 후기에서 ‘절단신공’이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명명된 것도 이때다.
“준비하다 지치거나 영감이 필요하면 후기를 읽곤 했습니다. 지금까지 10세션 이상의 중장기 캠페인 마스터링을 하지 못했던 건 역시 후기를 재밌고 힘이 나게 써주는 플레이어들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 마스터, 시즌2 최종화 후기
후기 제도가 플레이어 서비스가 아니라 마스터의 연료 장치였다는 것을 본인이 밝힌 대목이다.
III. 정점에서 연료가 떨어진다 (2022, 시즌3)
10주에 13세션, 614시간. 이 시즌의 캠페인 후기에서 그는 자기 이력을 승패로 정리한다. FitD 장기 캠페인 2승 1무 1패. 그리고 다음 시즌을 부정한다.
“아이디어든 시간이든 다음 시즌, 다음 캠페인에 쓸 것을 남겨두지 않고 투입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시즌 4도 다음 캠페인도 예정이 없습니다.” — 마스터, 시즌3 캠페인 후기
플레이어 쪽 어휘도 이 시즌에 최고조에 달한다. “각본 원안, 미술, 음악, 연출, 감독을 맡아주신 마스터”. 시즌3 후기 77편은 전 캠페인 최다다.
IV. 절제를 선언하고, 2화 만에 멈춘다 (2023, 시즌4)
결국 시즌4를 열었고, 0화 후기에서 처음으로 방향 전환을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이후 두 번 더 반복될 문장의 원형이다.
“이번 시즌부터는 앞선 시즌들보다는 좀 덜 작가주의적(?) 마스터링을 하려고 합니다. 이전 시즌만큼 프렙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플롯을 압축하고 장시간 플레이를 요구하는 식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 마스터, 시즌4 0화 후기
기록은 1화에서 끊긴다. 후기 8편이 남았고 종료 회고가 없다. 중단 사유는 저장소에 남아 있지 않아 여기서도 단정하지 않는다.
V. 빚을 갚고, 다시 작가가 된다 (2024-25, Relight · 시즌5)

2020년에 중단됐던 잿불 캠페인을 Relight로 다시 열어 처음으로 엔딩을 봤다. 평생 한 번 할 수 있는 룰이라고 말해온 것에 대한 결산이었다.
이어진 시즌5는 캐주얼하게 가겠다고 예고하고 시작해, 추리물이 되면서 가장 어려운 시즌이 됐다. 여기서 그는 자기 유형에 가장 정확한 이름을 붙인다.
“이번 시즌은 마스터보다는 좀 작가처럼 마스터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좀 들긴 합니다. (…) 다음 캠페인을 하게 된다면 이제 정말로 가볍고 캐쥬얼하게 진행하고 싶군요. 이번에도 그러고 싶었긴 했지만.. 정신 차리고 보면 꼭 이렇게 된다니까요.” — 마스터, 시즌5 캠페인 후기
VI. 결심 대신 룰을 바꿔본다 (2025-26, ErrorHeart)

여섯 해 만에 처음으로 FitD 계열을 떠나 데이터룰인 대거하트로 옮긴다. 결심으로 안 되니 시스템을 바꿔 자신을 제약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결과는 같은 진단이었다.
“이번 캠페인은 TRPG스럽지 않았던 부분들이 제법 많았던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를 제한된 세션 안에 전달하려다보니 설명이 길어지고, 그러다보니 PC들이 활약할만한 공간도 줄어든 것 같아요. (…) 그런 의미에서 좀 소설 같아진 면도 있고요.” — 마스터, ErrorHeart 캠페인 후기
다만 이번에는 원인 분석이 한 겹 깊어졌다. 어둠칼의 막간활동이 PC의 자유를 만들어내는 장치였는데 대거하트에는 그것이 없다는 것, 대거하트 룰북이 권하는 공동 세계관 설정 절차를 생략한 것이 문제를 키웠다는 것까지 짚는다. 그리고 룰 선택 자체를 되묻는다. 데이터룰이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이었는지.
같은 문장을 세 번 썼다
이 마스터를 한 줄로 설명하는 것은 강점 목록이 아니라 아래 세 문장이다.
| 시점 | 선언 |
|---|---|
| 시즌4 0화 | “이번 시즌부터는 앞선 시즌들보다는 좀 덜 작가주의적(?) 마스터링을 하려고 합니다.” |
| 시즌5 종료 | “다음 캠페인을 하게 된다면 이제 정말로 가볍고 캐쥬얼하게 진행하고 싶군요. 이번에도 그러고 싶었긴 했지만..” |
| ErrorHeart 종료 | “언젠가 다음 대거하트 캠페인을 열게 된다면 정말로 캐쥬얼하고 세계관에도 시나리오에도 공간이 충분히 있는 캠페인도 해보고 싶네요.” |
세 문장 모두 마스터 본인의 후기에서 온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플레이어들이 이 패턴을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는 점이다. 시즌5 후기에서는 선언과 결과의 괴리가 아예 농담 소재로 등장한다.
“이번 캠페인에서는 초반부터 캐주얼하게 가시겠다고 하셔놓고 결국에 또 차력쇼를 보여주신 삐룩님…” — 플레이어, 시즌5 캠페인 후기
여기서 이 반복의 성격이 드러난다. 플레이어들은 그가 약속을 못 지킨다는 것을 알고, 지적하고, 그러면서 다음 캠페인에 또 온다. 지키지 못한 약속이 여섯 해 동안 팀을 해체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 패턴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말해준다.
플레이어의 평가어가 바뀐 순서
후기에서 마스터를 부르는 말은 시즌마다 다른 층위로 이동한다. 이 이동 자체가 팀의 숙련도 곡선이다.
| 시기 | 부르는 말 | 대표 표현 |
|---|---|---|
| 시즌1 | 안내자 | “시트메이킹 처음부터 하나하나 같이 해주셔서” |
| 시즌2 | 제작자 |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준비성”, “절단신공이 거의 삐룩님의 트레이드 마크” |
| 시즌3 | 감독 | “각본 원안, 미술, 음악, 연출, 감독을 맡아주신 마스터” |
| 시즌5 | 공범 | “정교한 드라이빙”, “마스터가 얘기한 중요한 분기점”, 그리고 “차력쇼” |
시즌1의 평가가 학습 지원에 집중된 것은 대부분이 CoC 경험만 가지고 합류했기 때문이다. 시즌3에서는 플레이어가 그의 방식을 배워 직접 마스터링해 보겠다는 언급이 여러 편에 나온다. 스타일이 팀 내부로 복제되기 시작한 지점이다. 시즌5에 이르면 어휘가 감탄에서 분석으로 내려온다. 플레이어가 설계 의도를 실시간으로 읽고, 그 의도가 빗나가는 지점까지 지적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팀 구성의 연속성도 이 곡선을 떠받친다. 촬영을 맡은 직스는 시즌1부터 파이널까지 전 구간에 있었고, 오랑시는 거의 처음부터, 날다다는 시즌3부터 합류해 잿불과 대거하트까지 함께 갔다. 후기 324편이 남은 것은 재능보다 이 지속성의 산물에 가깝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의 말
이 문서의 재료는 전부 그가 만든 제도에서 나왔다. 마스터가 후기를 쓰는 팀은 흔치 않고, 그는 시즌1에 그냥 한번 써보기로 하고 여섯 해를 썼다. 자기 실패를 그렇게 성실히 적어 둔 사람이라 이런 분석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은 그의 진단이 아니라 그와 함께 여섯 해를 보낸 사람들의 말로 맺는 것이 맞겠다.
“이 세계를 만들어 매주 티알피지하는 날만 기다리게 만들어주셨던, 삶에 또 다른 활력과 열정을 티알피지로, 캠페인으로 끊임없이 알려주셨던 삐룩님” — 플레이어, 시즌5 캠페인 후기
“시즌5로 어둠칼은 끝났지만 어둠칼을 함께하던 순간과 마스터와 플레이어분들의 인상은 영원히 제 안에 함께입니다!!!” — 플레이어, 시즌5 캠페인 후기
그리고 마스터 본인이 파이널 후기에 남긴, 이 여섯 해에 대한 가장 짧은 요약.
“2020년 1월 2일 첫 캐메로 시작했던 캠페인이 2025년 2월 22일에 시즌 5개를 마치고 종료되었습니다. 딱 5년 했네요. 한 캠페인을 44세션이나 하다니.. 평생 해본 적 없고 앞으로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 마스터, 시즌5 캠페인 후기
분석 대상은 후기 324편(어둠칼 224 · Relight 66 · ErrorHeart 34)과 마스터 노트, 에피소드 가이드다. 시즌4의 중단 사유와 Long Shadow의 상세 기록은 저장소에 남아 있지 않아 여기서도 확정하지 않았다.